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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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첨단과학기술 배출의 산실

가브리엘 드 노마지 에꼴 폴리테크닉 총장

[과학기술한림원 공동기획]
세계 일류대 총장이 말한다②

이현경 기자
사이언스 타임즈, 2004년6월29일

“졸업생 100% 취직보장, 비즈니스 마인드와 국제감각을 갖춘 교수진 그리고 GDP의 3%를 과학에 투자하는 국가의 전폭적 지지가 프랑스를 현재의 과학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나폴레옹 제정시대 건립, 프랑스 최고의 과학엘리트 양성 기관인 에꼴 폴리테크닉의 가브리엘 드 노마지 총장은 위의 세 가지 조건이 일류 이공계 중심대학으로 이끈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세계 일류대 총장이 말한다' 기획 시리즈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에꼴 폴리테크닉 총장과의 인터뷰는 국내 언론사로서는 처음.

우리에게도 이미 알려진 TGV(떼제베), AIRBUS(에어버스), 아리안 우주발사대 등이 바로 프랑스 첨단과학기술의 상징이며 이처럼 프랑스 과학기술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고 있는 주역들의 대부분이 에꼴 폴리테크닉 출신들이다.

드 노마지 총장은 한국 과학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인 러플린 교수의 KAIST 총장임명건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러플린 교수의 업적은 한국의 일반대중에게 큰 과학적 관심을 고취시킬 것"이라며 " '노벨상 출신의 총장'같은 상징적 모델은 이공계 뿐만 아니라 KAIST란 학교의 명성에도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한사람의 스타를 통해 집중적 이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과학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명성보다는 시스템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에꼴 폴리테크닉은 교육과 관련해서는 국방부 산하에 속해있으며 연구에 있어서는 프랑스 국립 과학 센터(CNRS)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프랑스 국방성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국가주도의 교육기관으로 우리나라의 KAIST과 유사한 성격의 엘리트 과학기술 교육기관이다. 프랑스가 발달한 산업이 첨단산업중에서도 특히 무기(군수)산업인데 바로 에꼴 폴리테크닉이 국방성 산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인문과학에 치우쳐 있던 ‘예술의 나라’ 프랑스가 ‘과학입국’으로 전환한 계기는 2차대전 당시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뼈아픈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드 노마지 총장은 "국내총생산 대비 과학투자비 3% 원칙고수와 같은 정부의 전폭적 지지가 현재의 과학강국을 이끌었다"면서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차원의 지원외에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각계각층에서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기업들의 활발한 지원과 이들과의 원활한 공조, 에꼴 폴리테크닉 재단 기금, 졸업생들의 후원이 학교를 성장시키는 큰 힘"이며 "학교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그 형태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청소년들의 과학계 기피현상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하자 “에꼴 폴리테크닉 졸업생은 100% 취업이 보장되며 과학도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이공계통 직업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즉 과학도들에 대한 생계보장과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통해 이공계 기피문제 해소는 물론 양질의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양성을 위해 대학 차원의 '우수인재양성책'도 활발히 시행중이다. 최고의 엘리트와 국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재학기간(4년)의 30%에 해당하는 18개월의 기업연수 의무화, 기업과의 끊임없는 공동 프로젝트 개발 등을 통해 학문과 실용의 접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기업과의 협력은 학생들에게 직업과 경력에 대한 열정을 고취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며 "특히 세계시장에 진출해 있는 졸업생과 재학생간의 협력과 교환 역시 좋은 모델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2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에꼴 폴리테크닉이 오늘날에도 프랑스 뿐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이유는 뭘까. 드 노마지 총장은 "외부인사들로 이루어진 5년 주기의 엄격한 심사와 함께 연구직, 강의직의 분리로 인한 전문화"를 일류대학의 명성을 이어온 이유로 꼽았다. 또 "세계의 변화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국제적 감각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동시에 갖춘 교수진의 채용도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대립 상황, 자원의 빈약,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에서 과학 관련 주요업무를 맡는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재정 자금확보를 위해 국가와 기업을 설득해 장기간 협력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라며 과학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재정 확보’가 선결 과제임을 재확인했다.

한국의 나노공학과 전자공학에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아시아 과학 발전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달려가겠노라'고 한국과의 과학 교류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피력했다. 그는 "이미 몇몇 연구소에 한국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주력 사업인 광학, 정보통신,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 공학 등의 분야에 있어서도 교수 및 학생들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양국간 상호협력의 뜻을 밝혔다.

항공학교를 졸업,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드 노마지 총장은 과학자의 매력을 묻자 "깊은 성찰과 사회요구에 부흥하는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다"며 "단순히 상업적 환경을 넘어선 장기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열정으로 과학자가 되었다"고 답했다.

또 “매해 열리는 파리의 개선문 군사행진에서 최선두에 서서 행진하는 것은 프랑스 육군사관학교가 아니라 에꼴 폴리테크닉 학생들”이라고 힘주어 말한 후 "내일의 황금은 오늘의 지식인들에게 나오는 것”이라는 문학적 여운으로 한국과학계에 대한 메시지를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