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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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경기자의 Sports Focus

포틀랜드블레이져 스와 소수민족

이현경 기자
한국일보 샌프란시스코, 1999년11월6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포틀랜드 블레이져가 43승 11패 승률 0.796로 NBA 29개 팀을 통틀어 당당 1위에 랭크 되어있다. 단순히 랭크돼 있는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최강의 전력으로 연승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이 있다.

블레이져하면 머릿속에 퍼드덕하고 떠오르는 선수가 없다. LA 레이커즈하면 '공룡 센터' 샤킬 오닐 또는 차세대 조단을 노리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인디애나 페이서스하면 '3점슛의 달인' 레지 밀러가, 뉴욕 닉스하면 '드림팀 원조 센터' 패트릭 유잉이 바로 공식으로 떠오른다 .

그리고 이 팀들의 공통점은 모두 승률 6할 2푼을 웃돌며지구 1, 2위를 다투고 있는 강팀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포틀랜드라는 이미지에는 별반 이렇다 할 스타가 연결되지 않는다. 물론 스코티 피펜, 아비다스 사보니스 등 전설의 노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바로 NBA 를 대표하는 뛰어난 플레이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피펜은 알다시피 보조 연주자다. 시카고 불스가 90년대 중후반 황금제국을 건설할 때도 그는 언제나 조단의 그림자였고 무대의 전면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사보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구(舊) 소련시대 살아있는 전설로 칭송 받아온 러시아의 자존심이기는 하나, 적성 국가 출신선수 유입 금지법에 걸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선수생활의 최정점을 유럽무대에서 보내고 뒤늦게 NBA에 뛰어 들었다. 한 발짝 더 움직여 개인기록까지 보면 더욱 삭막하다 . 그야말로 아무도 없다. 간신히 스티브 스미스와 래쉬드 윌리스가 득점부분 42, 43위에 달랑이름을 내걸고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 90년대 시카고 불스가 세웠던 2번의 8할대 승률 (95-96 시즌 0.878, 96-97 시즌 0.841)을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90년대역대 3번째의 고 ( 高 )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긴 작년에도 지구 1위를 차지 할정도로 포틀랜드는 강팀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름으로만도 상대방을 주눅들게 하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 그리고 '마이더스의 손' 필 잭슨까지 가세한 레이커스마저 따돌리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방울 한방울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다윗이 골리앗을 눕혔다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이기기 힘드니까 그냥 대개 포기하고 만다. 그렇지만 포틀랜드는 그 힘든 일을 해내고 있다.

멀게는 수많은 소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독재정권에 대항, 분연히 일어났던 4.19를 보는 것 같고, 가깝게는 민초들이 위험을 무릅쓰고일 궈낸  6.29를 보는 듯한 기분이라면 심한 과장일까?

여하간 다른 강팀에 들어가면 주전자리도 꿰차기 힘든 선수들이 똘똘 뭉쳐 힘겹게 힘겹게 승수를 쌓아 나갈 때마다 거대한 이국(異國) 아메리카에서 우리 같은 소수민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보는 것 같다면 이 또한 나만의 과념(過念)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