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Tel: +82-42-869-2075
FAX: +82-42-869-4800
email: hklee0124@hotmail.com

'국립대법인화'라는 폭풍우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 2005년 9월30일
[번역: 이현경]

내가 오래 살았던 샌프란시스코는 겨울에만 태평양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비가 내린다. 이것은, 한국보다 더 추운 것만 빼고는, 태풍과 비슷하다. 작은 바람이 일어나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거세게 돌변한다. 떨어질 듯 말 듯 시작한 빗방울들이 점차 커져 마침내 지붕 위를 두드리며 다른 모든 소리를 잠재운다. 폭풍우는 몇 시간이고 계속되기에, 이때는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명하다. 나는 이 폭풍우의 혼돈과 맹렬함을 즐기며, 한국에 있으면서도 이를 그리워한다.

바로 지금 ‘대학 법인화’를 둘러싼 논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우가 일본, 미국 그리고 한국을 엄습하고 있다. 여기 한국에서 그것은 1년여 동안 서서히 일기 시작하다가, 현재는 폭풍우 직전처럼 거대한 타격과 경고의 순간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21일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국립대 운영체계 개편협의회’ 구성 사전모임에서 “경쟁력이 있는 대학부터 법인화를 실시하겠으며, 서울대의 경우 (법인화 후)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높이면 재정상태가 좋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커다란, 비록 모든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사회적 반발이 있었다.

나는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이런 종류의 격렬한 논쟁을 여러 차례 보아왔기 때문에 내가 아는 대다수의 한국인이 이 상황을 곤혹스런 국내 정치문제로 파악하는 데 비해 덜 염려하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한 나라가 정보화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결과일 따름이다. 선진화된 지식경제 사회에서 사람들은 경쟁자들의 지식 습득을 가로막으면서 생활을 꾸려간다. 다시 말하면 지식경제 사회에서 지식은 반드시 자산이 돼야 하므로, 무료로 나누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고는 일반적인 교육 이론과 정확히 배치되므로, 새로운 모델로의 이행은 격렬할 수밖에 없다. 지각 있는 대다수 한국의 학부모는 비록 공공연하게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런 원리를 이미 이해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자녀를 ‘최고의 대학들’에 보내려는 몸부림은, 상당 부분 자신의 자녀가 다른 사람 자녀들은 얻지 못하는 자산이 되는 지식을 획득하게 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렇기에 그 몸부림은 그토록 치열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행 국공립 대학 체제를 그대로 지속해가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식경제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수요자와 공급자 간 관계의 취약성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육적 생산물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불행히도 지식경제란 쓸모없는 정보와, 소중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없는 지식을 광범위하게 과잉 공급하는 것이 특징이다. 좋은 지식은 획득하기 어렵고 비싸기 때문에 교육기관들은 수요자들의 격노를 막기 위해, 수강 목록에 쓸데없는 지식의 비율을 점점 높이는 경향이 있다. 정부 관료들은 이런 경향을 억제하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언제나 패배로 끝난다. 왜냐하면 공무원 규정은 인간이 어렵고 불쾌한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알려진 ‘소득’으로 위협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어떤 한국인들은 ‘우수한’ 국공립 대학은 그대로 유지하고, ‘수준 미달의’ 국공립대학만 법인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미국에서의 내 경험을 통해 보면, 이는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우수한’ 대학은 곧 엘리트로 구성된 대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대다수 국민의 자녀는 이런 대학에 다닐 수 없음을 뜻한다. 교육은 국민들에게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세금을 다른 사람 자녀의 교육에 쓰는 사람은 투표로 자리에서 쫓아낼 것이다. 나는 지금 엘리트 대학을 운영하고 있기에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염려한다.

바다 건너편의 건조한 나라에서는 이런 폭풍우를 -비록 아주 무섭긴 하지만- 가치 있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폭풍우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난다. 공기는 형언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차고 감미로워지며, 하늘은 짙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색으로 바뀐다. 여전히 잎사귀에 달려있는 몇 개의 물방울이 태양 아래 찬연히 빛나고, 개울물은 다시 한 번 가득 넘쳐 흐르며, 세상은 다시금 노래한다.


[2005년 창작된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저자 R. B. Laughlin에게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기구(Creative Commons)의 라이센스 하에 배포됩니다. 저자는 비상업적인 목적에 한해 저자정보를 표시하고 원본의 수정 없이 복사, 배포, 게시, 실연하는 것을 허가합니다. 상업적인 권리를 포함하여 기타 모든 권리는 저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