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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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다음‘영웅 ’을 느긋하게 기다려라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 2005년 12월 30일
[번역: 이현경]

내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내 자동차가 파손된 적이 있었다. 사건은 어느 추운 겨울 저녁 파티에 참석하려고 차를 세워뒀던 어떤 집 뒤에서 일어났다. 파티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차의 계기판에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했다. 분명 여러 명의 도둑들이 차 안의 라디오를 훔치려고 계기판 틈새에 막대기를 집어넣었다가 나중에야 라디오 도난 방지용 강철 보호장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 같다.라디오는 망가졌지만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로 문제가 된 것은 그 도둑들이 나의 사적 공간에 침입해서 힘들게 번 돈으로 구입한 내 소유물을 고의로 모멸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마치 내 몸이 폭행당한 듯이 느꼈다. 몇 주가 지나서 나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라디오를 교체하지 않았다.

많은 한국인들은 최근 황우석 교수의 복제 연구 중 일부분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와 비슷한 충격을 느끼고 있다. 현명한 사람들은 최종 판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사실이 확인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 세부사항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황 박사의 서울대 교수직 사임에 의해 확증되었듯이 진실에 대한 모멸이다. 이는 마치 신체에 대한 폭행과 같다.

황우석 교수의 혐의들은 내가 한때 재직했기 때문에 매우 잘 아는 벨연구소의 물리학자 헨드릭 쇤 박사의 부정행위와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황 교수와 마찬가지로 쇤 박사 역시 막대한 상업적 잠재력을 가진 최첨단 발견을 이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사이언스지(誌)와 같은 저명한 학술지에 놀랄 만한 논문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는 또한 연구소 경영진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으며, 그들은 그의 성과물을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홍보하고, 특허와 그것들의 잠재적 이윤 가능성을 주주(株主)들에게 자랑했다. 쇤 박사는 또 자신의 모국인 독일로부터 엄청난 존경을 받았고 막대한 연구 예산을 가진 연구소의 책임자 자리를 제안받기도 했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 후보자 명단에도 올랐다. 하지만 그 역시 자기 실험실의 내부 고발자에 의해 진실이 드러났다.

황 교수와 쇤 박사의 두 사건 모두 국가적 자존심과 감정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됐다. 쇤 박사 사건은 트랜지스터, 태양전지, 레이저, 컴퓨터 C언어, 유닉스를 비롯한 수많은 주요 기술적 발명품의 산실로서 전설적 명성을 가진 벨연구소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가 젊었을 때 자긍심으로 가슴을 벅차게 했던 벨연구소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는 내가 즐겨 얘기하는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발생했던 이 사건과의 비교는 현재 황우석 박사와 관련해서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경험이 한국인들의 자아 의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한(恨) 맺히도록 침울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나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강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영웅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그들의 영웅이 열차와 같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열차를 놓치면 다음 열차를 타면 된다.

황우석 박사와 쇤 박사의 경우는 모두 진실·솔직과 경제적 가치·비밀스러움의 균형을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인들은 올바른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것을 너무 죄스럽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 역시 올바른 절충점을 찾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모두는 계속 전진하면서 고장난 라디오를 바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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