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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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중간 왕국’ 한국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 2005년 4월 23일
[번역: 이현경]

가족을 부양하는 많은 사람들은 출생순서가 자녀의 성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다. 먼저 태어난 형제들의 ‘사업 전술’에 의해 부모의 관심으로부터 차단된 어린이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는 다른 전략을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에서 그 원인은 ‘경제적’이라고 종종 주장된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자녀들의 성격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장남·장녀는 전형적으로 ‘책임을 지고’, 주어진 일을 확실하고 똑바로 그리고 시간 안에 마치는 관리자형이다. 막내는 귀엽고 영악한 경향을 띠고 있으며, 자신만의 방식을 최대한 즐기고, 대개 이는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경우는 중간 자녀이다. 그들은 장남·장녀를 집안의 ‘기둥’으로 여기고 막내를 귀여워하는 부모로부터 간과되고 잊혔다고 느낀다. 그래서 종종 가족의 테두리 밖에서 의미를 찾으며, 비전통적인 복장과 활동 그리고 사고 등에 사로잡히는 모험가가 된다. 그들은 또한 실망스런 일들을 다른 형제들보다 잘 다루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가족의 일에 감정이입을 해서 좋은 중재자가 된다.

몇주 전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파티에서 5억달러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옛 제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화제는 어느덧 아시아 투자로 옮겨갔다. 적당한 때가 왔을 때, 나는 한국을 중국과 일본에 비교했을 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숙고하더니 한국은 자신에게 ‘사업 계획’이 없는 나라처럼 보인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인지 알고 있기에 깜짝 놀랐지만, 계속해서 주의깊게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중국은 분명히 값싼 양질의 인력이라는 사실상 무한한 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가(低價) 제조업의 성장이 일어나는 곳이고, 일본은 고가(高價) 기술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회사가 지난해 한국에서 좋은 투자대상을 찾으려 했지만 성과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말이 그만의 주관(主觀)이든 글로벌 투자자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든 간에, 그것은 인접한 두 강대국의 압박을 받아서 현재의 번영에서 밀려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는 대부분 한국인들의 가슴에 공포를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당장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마치 중간 자녀들의 경우처럼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제학의 법칙은 어떤 소망과 노력으로도 뒤집을 수 없기에, 초급 그리고 고급 시장에서 한국은 배제될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그에 못지않은, 유망하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간 자녀들은 때가 오면 자신들의 시장을 찾고, 제대로 헤쳐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한국이 핵가족 내 중간 자녀의 국제판으로 동북아시아의 ‘중간 왕국’이 될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이유는 어떤 특수한 문화나 유전적 특성이 아니라 단지 출생의 우연이 혁신 이외의 모든 선택권을 뺏어버렸기 때문이다. 중간 자녀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선택권의 제한에 비전통적인 방법-부모의 허락 없이 번지점프를 하거나 돛단배로 대양을 건너는 것과 같은-으로 응수하는 것이다. 비록 대다수 한국인이 안정과 안전을 너무 좋아하기에 위험한 도전을 포용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중간 자녀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중간 자녀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가장 존경할 만한 문명들조차 고난의 시간을 겪어왔고 이를 잘 극복해왔다. 고대 이집트는 한동안 희망 없는 정치적 혼란을 경유한 후, 인류 최초의 ‘중간 왕국’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역사는 이때를 예술·문학·상업 그리고 번영의 시대로 기록하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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