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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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밴드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 2005년 10월 21일
[번역: 이현경]

지난 15일 카이스트에서 열린 MBC 대학가요제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원리 발견 100주년의 해―과학기술계 대학이 확연하게 정보화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순간―에 영감을 불어넣은 행사였다.

이 가요제는 과학기술을 홍보하는 그 어떤 지루한 광고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세계적 수준의 연출력과 매우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보여주었으며, 정책적 선전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서 아주 정확하게 시장 수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우리 카이스트 밴드 중 하나가 결선에 진출한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카이스트 밴드는 대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가요제의 경쟁은 세계 수준―정부에 의해 정의된 허구적인 세계 수준이 아니라 시장 수요에 의해 정의된 진정한 세계 수준―이었다. 진정한 세계 수준의 경쟁에서는 어떤 일을 하든지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기의 전력을 다하면서 실수를 통해 배우고 그래서 다음에는 좀더 발전한다. 진정한 세계 수준의 경쟁에서는, 시험 성적, 학벌 또는 가족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의지할 수 없다.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대상을 수상한 밴드의 장점은 다른 밴드들보다 전달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부연설명을 하겠다.

그 밴드의 리드 싱어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여학생이었다. 그 눈동자의 반짝임과 움직임, 신체의 굴곡, 목소리의 발성, 가사 전달의 절묘함은 보통 여학생이 파티에서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는 것과는 달랐다. 그녀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다. ‘여러분은 매력 있고, 그런 여러분이 나를 좋아해주기를 갈망한다. 나 역시 매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적이다. 나는 인생을 사랑하며, 많은 세상사, 특히 여러분에게 열정이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리듬 기타리스트는 대단히 현대적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나는 당신을 포함한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머리 색깔과 비뚤어진 안경, 빨간 넥타이와 빨간 코트는 중성적 이미지를 전달했다. 그의 모든 이미지는 물음표였다. 베이스 기타를 치던 여학생 역시 중성적 이미지를 전달했다. 그녀는 귀여운 얼굴에 봉제인형 같은 댕기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기타에서 튕겨나오는 음색은 남성적이며, 권위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관능적이었다. 그녀가 보내는 메시지는 “내가 귀여워 보이겠지만 놀림의 대상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 밴드에서 키보드 연주자는 가장 흥미 있는 역할을 했다. 그는 오직 4박자로만 반복 연주해서 리드 싱어의 노래에 ‘응답’할 뿐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내가 듣고 있어요”였다. 하지만 그는 사실 “우리 모두는 리드 싱어, 당신의 노래를 듣고 있어요”라는 청중들의 머릿속에 있는 목소리를 대신했다.

내가 새로운 곡을 만들고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장려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내 음악 실력은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사람들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마음을 가다듬고 음악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한다면 그들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내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 모두 음악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대중 앞에 표출하는 것은 두렵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과정은 당신을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습득이라는 멀고도 험한 여정에 들어서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선진국의 모든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번 대학가요제는 한국에서 자신을 숨기는 유교적 관습이 역사의 진보에 의해 사라져버렸음을 아주 극명하게 증명했다. 그런 관습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잊힐 것이며, 그것을 현대화하는 사람들은 성공할 것이다. 현명한 행동은 이제 막 우리에게 열려진 문을 통과해 앞으로 나아가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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