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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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기회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2004년 11월 15일
[번역: 이현경]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작은 오솔길로 하이킹에 데려가곤 했었다. 거기 냇물이 있는데, 커다란 소나무가 쓰러져 자연스럽게 다리가 돼 있었다.

하루는 그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데, 흐르는 물살이 얼마나 무서운지 막 깨달을 나이가 된 큰아들이 나를 쳐다보며 "아빠, 만약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돼요?" 하고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곁에 있으니 안심하라는 뜻으로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면서 "떨어지지 마"라고 말해주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적어도 초년에는 통나무 다리에서 떨어지듯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에 골몰하여 자녀를 명문 유치원에 보내고, 학교교육 이외에 과외를 받게 하며, 대학생이 된 후에도 전화를 걸어 숙제를 잘 하는지 등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분들도 있다.

안 좋은 경우도 있다. 내가 살던 샌프란시스코 인근 팰러앨토(Palo Alto)에서도, 부모가 자녀들의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 매질을 하거나 약을 먹이는 일,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런 스트레스와 관련하여 10대의 나이에 자살한 학생을 나는 둘이나 직접적으로 안다. 버클리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교내 종탑 위에서 투신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 벽을 설치했다. 코넬 대학에는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골짜기가 있는데 그 위로 놓인 다리에서 학생들이 투신하기도 한다.

어른들이 여러 방지책을 마련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더러 통나무 다리에서 떨어지는 실패를 겪는다. 마치 우리 어른들도 그런 것처럼. 이따금씩 실패하는 것은, 자신의 현재 능력과 수단을 넘어서는 목표에 도달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결과다. 하지만 그러한 실패들이 곧 문화의 창조력을 보여주는 징후인 경우도 있다. 확실하게 성공하는 법은 목표를 낮게 잡는 것임을 우리는 다 안다. 극도로 예술적인 사람들 중에는 종종 학업 성적이 낮은 사람들도 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에서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많은 위인들이 대학에서는 낙제해 중퇴했다. 화가 클로드 모네의 아버지는 모네가 은행가가 되지 않고 고단한 예술가의 길을 택했기에 매우 절망하기도 했다.

바로 이 때문에, 튼튼한 사회에서는 제2의 기회란 것이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종종 내게 다가 와 이렇게 묻곤 한다. "어렸을 때 시험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늦게나마 과학기술에 흥미를 갖게 됐습니다. 위대한 발견을 하거나 사회에 이바지할 뭔가를 찾고 싶습니다만,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라고. 나 역시 그 나이 또래에 비슷한 고민을 했고 그 심정을 잘 알기에, 늘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노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 노벨상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자유와 규율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한 국가를 최대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시험성적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미국에서는 독립심과 자기실현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방황한다. 내가 한국 교육제도에 대해 조언을 드릴 자격은 없다. 다만, 한국 사회가 좌절한 학생들을 위한 제2의 기회들을 좀더 다양하게 제도화한다면 많은 이득을 볼 것이라고 느끼며, 기회 있을 때마다 그렇게 주장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수년 전 다른 노벨 수상자들과 함께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중국 교육부 장관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말 중 하나가 기억에 남아 있다. '엘리트 위주 정책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바가 기대에 못 미쳤다'면서, '이제는 전체 인구의 상위 20%를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재원 확보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제2의 기회를 요구하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에서조차도, 진보적 사상가들이 아니라 팽창하는 현대 경제의 작용이다.

시험성적에 좌절하여 어둡게 흐르는 한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어서 집에 돌아가서 푹 자고 일어나, 다시 한번 도전해 보라!" 고당부하고 싶다. 왜냐하면, 누구나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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