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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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기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 2005년 3월 1일
[번역: 이현경]

일주일 전에 선진국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한하는 교토 의정서가 발효됐다. 모든 조인 당사국들은 문명의 기술적 발달이 지구를 해친다고 생각하며, 곧 법과 실천에서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정서의 원칙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한다. 자원 낭비, 이기심, 탐욕, 무관심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행히도 우리는 현대판(版) '원죄(原罪)' 도고백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기술적 지식이야말로 우리가 나쁜 짓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나쁜 것이란 점이다.

지난 11월 나는 '과학기술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교토에서 열린 주목할 만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주제는' 빛과 그림자'로, 과학기술 진보의 양면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고이즈미 일본 수상을 비롯해, 각국 정부 고위층, 유력한 기업계 지도자들, 박애주의자들과 과학자들 등이 연설을 했다. 이들의 발언도 대단히 진지하긴 했지만, 회의장 한쪽 구석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뤄진 대화들이 훨씬 더 중요했었다는 점은, 그 회의장이 바로 교토 의정서가 마련된 곳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기도 했다. 비공식 대화란 이런 것들이었다. 인류는 인간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기 위해 복제를 금지해야 할 것인가? 질병의 무기화(武器化)를 방지하기 위해 세균 연구를 금지해야 할 것인가? 테러와 싸우기 위해 인터넷에서의 자유로운 정보교환을 금지해야 하는가?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컴퓨터 코드는 쓰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할 것인가? 핵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핵연구를 금지해야 하는가? 이 문제들에 있어서 각각 쟁점은 우리가 어떤 행위를 중지해야 할 것이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종류의 지식을 중단시켜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이런 대화는 공소(空疎)한 사교적 대화가 아니었고, 유달리 이 회의에서만 이루어졌던 토론 또한 아니었다. 그 토론들은 우리의 멋진 새 '정보화 시대' 가 오히려 일반대중을 정보의 공유에서 차단하려 애쓰고 있는 슬픈 진실의 징표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르네상스의 시대가 아닌 중세 암흑기의 초입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들은 과학기술을 존중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 어두운 이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다른 나라 누구들이나 마찬가지로 여러 우려들을 갖고 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컴퓨터에 중독돼 있는가? 한국의 인터넷 이용량 중 얼마나 많은 비율이 음란물 접속인가? 한국은 결국 핵폐기물 매립 장소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 언제 한국민들은 죽은 애완동물을 복제하기 시작할 것인가?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에서도, 과학기술의 진실로 중요한 측면은 과학기술 전문가들만의 배타적 영역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낙관론자이고, 언제나 지식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편에 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탁월한 인식이 있기에, 지식 설령 위험한 지식일지라도 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또한 사물을 아는 것은 음식을 먹거나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갖는 권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이같은 리버럴한 견해조차도 현실에 구애를 받는다. 나의 특이한 경력 탓에 나는 핵무기의 기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물론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 테러리스트들도 접근할 수 있는 (핵무기 지식에 관한) 지하(地下) 시장이 따로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앎에도 불구하고 나는 핵관련 비밀 지식의 공표에 찬성하지 않는다.

어떤 과학적 지식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널리 알려져서는 안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나는 늘 가장 똑똑한 학생들에게, 향후 100년 안에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로 대도시를 파괴하지 않을 확률에 대해 물어본다. 하루 이틀 후쯤에 학생들은 "확률 제로(0)" 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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