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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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자랑스러 웠다

로버트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
대전시유성구 구성동373

조선일보2005 년 2월 1일
[번역: 이현경]

우리가 러시아인들에 대한 호감을 마음 한구석에 갖지 않기란 어렵다. 내 말은 탱크나 KGB, 붉은 광장의 지겨운 군사 행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소련 시절의 광기(狂氣)에 줄곧 고통을 받고페레스 트로이카(개혁)의 충격을 경험했으며 결국엔 체제 붕괴를 겪은 평범한 러시아 사람들에 관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과학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소련 정부는 이론물리학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연구 생활을 하면서 소련의 그 분야 사람들을 여럿 알게 되었고 또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이 문화적인 그 무엇인지 혹은 단순히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란 때문인지 간에, 하여튼 뭔가가 그들을 대단히 순진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나는 그들을 자주 만난다. 모스크바에서, 혹은 파리, 리우데자네이루, 뉴욕, 또는 서울 등지에서. 우리는 함께 술도 마시며, 집값이라든가 자동차 수리, 아내와의 사이에 생기는 골칫거리들, 그리고 자식들을 대학까지 교육시키는 일 등 일상사를 화제로 웃고 떠든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는 언제나, 그들의 깊은 기억 속에서 우러나는 듯한 어떤 특별한 슬픈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이들 중 한 명은 지금 미국의 시카고 대학 교수인 저명한 수학자이다. 내가 8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접했던 그의 저작은 이론물리학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업적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저작들을 종종 인용한다. 그는 대단히 몸이 튼튼하고 등산을 좋아한다. 그 부부는 9.11테러가 일어나기 몇 년 전 이슬라마바드 북쪽의 히말라야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돌아와서 모험에 대한 엄청난 이야기들을 쏟아놓았다. 카이버 고개로 가는 길에서 본 거대한 무기시장에 대한 끔찍한 설명이었다. 그는 또한 매우 가정적인 남자이고, 아들 하나도 우리가 부러워할 만큼 키웠다.

물론 그는 태어난 고향에 대해서도 강한 정서를 갖고 있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치안이 좋아서 여행이 안전했다. 그의 부모는 그를 혼자 기차에 태워 동부로 배낭 여행을 보냈다. 그는 그때 본 것들에 대한 멋진 이야기를 끝없이 풀어놓곤 했다. 우랄 산맥의 자작나무 숲이라든가, 광활한 사막을 건너 도달한 알타이 산맥의 전나무 숲과 빙하, 오브 강(江)을 타고 북극해에까지 이른 보트 여행, 바이칼 호(湖)의 숨막히는 파란 물빛, 그리고 호랑이들이 어슬렁거리는 아무르 강 너머의 신비스런 밀림 등.

한번은 우리가 어려운 물리 문제를 오랫동안 토론하다 지쳤을 때, 화제(話題)가 우리 학문이 봉 착한 난관으로 옮겨갔다. 냉전은 몇가지 뻔한 이유들로 인해 물리학에 도움을 주었지만, 냉전이 끝나자 어느 나라에서든 물리학자들은 연구 예산의 삭감에 직면해야 했다. 모든 나라의 정부들이 생활 과학에 더욱 관심을 쏟으면서 공학과 관련된 원초적인 것들에는 점점 무관심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한순간 갑자기, 마음의 빗장을 여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는 체면을 벗어던지고, 자기가 경제적 난민으로서 조국을 떠나게 됐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매우 자랑스러웠다" 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젊고 재능이 넘쳤다. 세계 최고였다. 스탈린이 직접, 우리가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거라고 선언했다. 우리들 중 국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높은 지위와 월급, 여행의 자유, 생각할 여가 등의 혜택이 주어질 것이었다. 우리는 모스크바에서 살도록 허락받을 거였고, 특권층만 이용하는 상점과 아파트에 드나들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우린 그렇게 해냈다. 하지만 혜택은 기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경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빈곤으로 내몰렸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월 100달러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민을 떠나야만 했다. 나는 이따금씩 고국에 돌아가지만, 자주 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했던 나라가 나를 멀리 내던져버렸다."

이런 말을 털어놓은 뒤 그는 냉정을 되찾았고,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와 기술적 토론을 재개했다. 우리는 둘 다 구제불능의 수학 중독자이고, 서로 어울리는 것을 즐긴다. 나는 때때로 그 대화에 관해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교훈이 중요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경제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한다. 스탈린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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