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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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모험…무조 건부딪치자"

카이스트러플린총 장의 수석비서관이 현경씨

대기업뛰쳐나와꿈만 들고미국행
기자시절총장기사 특종 쓴것이특별한 인연으로

주간조선2006년1월22일
김재곤 기자
truman@chosun.com

기자시절러플린 총장과처음 인연 을맺고지금은 그 의수석비서관이 된이현경씨.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로버트 러플린 총장은 총장 업무 외에도 국내에서 외부 강연, 칼럼 기고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러플린 총장이 언어의 제약없이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데는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수석비서관 이현경(李賢卿·36)씨의 역할이 크다. 이씨는 러플린 총장의 통·번역 업무를 전담하는 것은 물론 대학 내외에서 러플린 총장을 수행하는 그의 최측근이다.

이씨와 러플린 총장의 인연은 이씨가 수석비서관에 임명되기 전부터 시작됐다. 러플린 총장의 카이스트 총장직 수락 여부를 놓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던 2004년 여름, 이씨는 과학기술부 산하 과학문화재단 소속 ‘사이언스타임즈’의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러플린 총장이 근무하던 스탠퍼드대학이 제가 미국에서 생활했던 ‘팔로 알토’란 곳과 가까이 있어요. 사실 별 관계는 없는데 신문사 데스크가 저한테 당시 러플린 교수의 카이스트 총장직 수락 여부를 취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스탠퍼드대학 측을 통해 러플린 총장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이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이 오더라고요. 다음엔 전화통화를 해서 러플린 교수가 카이스트 총장직을 받아들이겠다는 확답을 받고 기사를 썼습니다. 이게 당시에 특종이 되었죠.”

이 기사가 나간 후 카이스트 측에서 연락이 왔다. 러플린 총장 취임과 함께 통역 등을 담당한 수석비서관직이 신설되는데 이 직책에 응시할 의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씨는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면접, 영어시험 등을 치른 끝에 수석비서관에 낙점되었다. 외부적으로 러플린 총장의 전담 통역관 정도로 알려진 수석비서관의 업무는 통역뿐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우선 국내 언론동향, 주요 이슈 등을 요약해서 총장님께 보고하는 것입니다. 총장님이 국내에서 외부 강연이나 칼럼 기고도 많이 하시거든요. 양질의 강연과 칼럼이 나오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우리나라 정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잖아요.”

현재 독신인 이씨는 러플린 총장과 함께 카이스트 캠퍼스의 관사에서 단둘이 살고 있다. 1층은 이씨가, 2층은 러플린 총장이 사용한다. 하나뿐인 현관은 같이 쓴다. 업무시간이 끝나고도 러플린 총장과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셈이다. “처음엔 솔직히 불편할 것 같아서 싫었어요. 근처에 마땅한 집이 구해지면 나가서 살 생각이었죠.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내다 보니 전혀 불편할 게 없더라고요. 총장님은 업무시간 이후엔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정도 외에는 철저하게 사생활을 보장해주시거든요. 평소엔 총장님이 집에서 언제 나가고 들어오시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이씨는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국내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느 샐러리맨처럼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던 중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일본으로 연수를 떠났다. 그곳에서 어학과정을 밟으며 3년 정도 생활한 후 이번엔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같은 계획경제가 어디 계획한 대로 굴러갔습니까? 미국이나 일본에 건너갔을 때도 굳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지는 않았어요. 좋게 말하면 모험가고, 나쁘게 말하면 무데뽀죠. 다만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지다 보면 기회가 보이고, 일단 그 때는 그 기회를 물고 절대 놓지 않습니다.”

2004년총장취임식에 서러플린총장과 얘기를나누고 있는 이현경씨(왼쪽).

미국에서는 한때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에 입사해 미국 프로농구(NBA), 메이저리그 등에 대한 기사와 기명 스포츠 칼럼을 연재하는 스포츠 기자 생활을 했다. 1년 반 정도 지난 뒤 실리콘 밸리에 있는 IBM사에서 일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고 싶다’는 애초의 꿈을 이룬 셈이다. 이씨는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이후 불어닥친 대량 해고의 여파에 떠밀려 직장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1년 반 정도를 근무했다.

길지는 않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놓고 보면 순탄한 미국 생활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듯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학창시절부터 ‘영어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던 그였지만 처음 시작하는 미국 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단지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빚어진 오해와 갈등이 더 큰 시련을 안겨주곤 했다. 이 때문에 심지어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미국에 건너간 지 석 달쯤 지나 처음으로 일했던 회사에서의 일이다. “한번은 휴가 간 상사의 컴퓨터를 사용한 적이 있어요. 나중에 자기 컴퓨터에서 파일을 삭제한 적이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없다고 했죠. 그걸로 끝냈으면 됐는데, 제가 아랫사람이다 보니까 괜히 찜찜해서 ‘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일이 생겨서 유감이다’라는 의미에서 ‘I’m sorry…’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이 사람이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화를 내더라고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까 나중엔 ‘나가라(Get out of here)’고 하는 겁니다. 알고 보니 미국에서 ‘I’m sorry’는 내 잘못을 인정한다는, ‘admit’의 의미를 담고 있더라고요. 또 잘못을 추궁할 때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시인하는 셈입니다.”

이씨는 지난해 가을 이 같은 에피소드를 포함하고 있는 영어 관련 서적을 출간했다. “영어에 존댓말이 없는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please’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말로는 ‘제발’ ‘부디’ 이런 식으로 해석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할 때 ‘제발’ ‘부디’ 이런 말을 씁니까? 그래서 ‘please’를 사용하는데 인색한 것 같아요. 같은 ‘please’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문장 앞에 오는 ‘please’는 약한 명령의 의미가 있어요. ‘Please fill out the form’이라고 하면 ‘서류 양식을 작성하시오’ 정도가 되는 거죠. 반면에 문장 뒤에 오는 ‘please’는 부탁의 의미로 쓰입니다. ‘~해 주실래요?’ 의 의미가 됩니다.”

오는 7월부로 러플린 총장의 2년 임기가 끝난다. 연임 여부는 러플린 총장의 선택에 달려있다. 만약 러플린 총장이 카이스트를 떠난다면 자연히 이씨의 자리도 사라진다. 수석비서관 이후의 계획을 물었다.

“우선 외교 분야에서 일해 보고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지금까지의 제 경력도 있고 해서 영어 교육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영어를 써먹을 수 있게 교육해주는 곳은 없잖아요. 특히 영어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걸 총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습니다.”